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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Artwork

Collaborated with Jihee Kim


천하무적의
Invincible
2022, Gouache on Arches paper, 172 x 131cm
너의 벚꽃
Your Cherry Blossoms
2023, Gouache on Arches paper, 131 x 31cm
 "멋진 좌절의 시대"
달리아(Dahlia)
변하기 쉬운 마음
얼마 전 엄지로 인스타 피드를 넘기다가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늦은 시간, 전 연인에게 ‘자니?’ 공격이 온다면 “나 돈 좀 빌려줘.”로 답장하면 바로 해결된다고. 그땐 킥킥대며 넘겼는데 이 일이 실제로 내게 일어났다. 새벽부터 병원에서 근무하느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침대에 늘어져 있었는데 그녀에게 문자가 왔다.

정확히 2년 4개월 만이었다.

제발 자기 좀 놔달라며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하나의 눈에서 무려 세 줄기의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독한 말들을 쏟아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6년의 연애가 그렇게 한순간에 끝나게 될 줄 몰랐던 나는 고스란히 폐허가 되었다. 나의 종교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나의 가족이었던 그녀는 그렇게 한순간에 나를 패대기쳤다. 폐허를 재건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고 비로소 그녀의 존재가 희미해질 때쯤, 모르는 번호로부터 발송된 ‘나 별이.. 잘 지냈어?’라는 문장이 핸드폰 액정에 동동 떠 있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소리 내 웃었다. 새삼 ‘나 돈 좀 빌려줘’는 이런 상황에서 얼마나 깔끔하고도 명징한 응수인가를 곱씹었다.

깜깜했던 방 안이 하별의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한 핸드폰의 밝은 액정으로 다시 환해졌다.
봉선화 빨강(Balsam)
내게 손대지 마세요
오늘 월별 전체 평가를 했다.

어쩜 모두 저렇게들 잘할까. 춤도, 노래와 랩은 물론이고 얼굴까지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것이 없는 나는 초라한 성적 앞에 또 한 번 좌절한다. 내가 춤추고 노래할 때 사장님 얼굴을 봤어야 한다. 누군가가 그렇게 대놓고 실망하는 얼굴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또 혼자 연습실에 남아서 연습하고 재평가 받아야 한다. 나를 포함에 단 세 명만이 재평가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아무도 내게 말은 안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나를 우습게 생각하는지.

딱히 놀랄 일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린 시절에도 늘 뒤처진 사람이었다. 특히 수학이 끔찍하게 싫었다. 다른 과목은 조금 모자란 능력을 미련한 나의 노력으로 채울 수 있었는데, 수학만큼은 내게 도무지 넘지 못할 산이었다. 슬프게도 나는 그 산을 끝까지 넘을 수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수학이 담임이었는데 그 무신경한 선생은 늘 문제를 다 푼 순서대로 집에 갈 수 있도록 했다.

깜깜한 밤이 되고, 모든 학생이 집에 갈 때까지 나는 혼자 남아서 숫자와 씨름을 하곤 했다. 그때 풀었던 숫자와 공식들은 하나도 기억 안 나지만, 등줄기를 서늘하게 했던 에어컨 바람, 비웃던 선생의 눈빛, 책상에 쓰여 있던 낙서들, 시험지의 굴림체 폰트만큼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다 포기하고 집에 가고 싶다.
매쉬 메리골드(Mash Marigold)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집에 와서 신발을 벗고 보니 발이 퉁퉁 부어있었다. 거울을 보니 영락없는 삶에 지친 아저씨의 얼굴이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서 혼나고 정신없이 회사를 뛰어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지.

축하받으며 입사할 때의 들었던 생각은 ‘이 회사에 뼈를 묻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매우 순진무구한 다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불킥을 열두 번도 더 할만한 멍청한 생각이다. 업무가 힘든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매일 얼굴을 봐야 하는 사람이 싫기 시작하니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지옥임을 초 단위로 깨닫는다.

이 부장이라고 쓰고 개새끼라고 읽는 인간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이 저렇게 배울 점이 단 하나도 없을까? 업무 능력은 말할 것도 없이 최악이고. 한 것도 없으면서 생색만 내는 답도 없는 성격, 자기한테 불리하다 싶으면 순식간에 남 탓으로 돌리는 것, 교묘한 직장 내 괴롭힘까지… 이걸 매일 시전하시니 우리 부서가 죽 쓰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뭐 하나 내세울 것 없는 저 새끼는 어떻게 저기 앉아서 따박따박 월급을 받아 갈까? 저 인간 때문에 매일 늙는다. 마음 안의 누군가를 향한 증오가 이렇게 한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지를 알고 나서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나는 더욱 슬퍼진다.

오늘도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그러니까 오롯이 나를 위해 고양이 레오를 쓰다듬으며 향초에 불을 붙인다.
레몬밤(Lemon Balm)
위로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결혼 전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썼다. 한국의 안네 프랑크랄까. 일기는 나에게 너무 당연한 일상이자 일과였다. 그러나 삶에 치이면서 언제 마지막으로 일기를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강렬한 어떤 사건에 영감을 받아 어렵게 일기장을 폈다. 누가 그러던데. 사람은 혼자 쓰는 일기에도 타인을 의식하며 거짓을 쓴다고. 맹세코 나는 그런 적이 없다.

모든 일을 그만두면서, 그러니까 아들의 양육과 남편의 뒷바라지에 힘을 쓰면서 글쓰기에 대한 나의 갈망과 욕망은 점점 희미해졌다. 꽤 어린 나이에 등단하고 비평가들의 찬사와 문단의 주목도 받았던 내가 이렇게 주저앉았다. ‘주저앉았다.’라고 감히 표현해도 되겠지. 어쨌든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편의 글도 발표하지 않았으니까.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내 시간이 조금은 많아질 때쯤 부끄럽지만, 단편을 하나 썼었다. 그리고 그 글을 가장 먼저 남편에게 보여줬다. 사실 그에게 보여준 것도 내게는 큰 용기였는데 그는 늘 그렇듯 심드렁하게 글을 읽더니 심드렁하게 “애썼어.” 한 마디하고 보고 있던 축구 경기로 시선을 옮겼다. 그게 다였다.

그의 반응에 큰 기대는 안 했지만, 나는 그 뒤로 더 이상 한 글자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김빠진 콜라처럼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오늘 우연히 나와 함께 활동했던 작가가 영국의 한 문학상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질투나 욕심도 마음에 뜨거운 것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사람이 하는 거니까 나랑은 관계없는 감정인 줄 알았는데, 이 기사로 인해 내 마음에 조그마한 불이 지펴졌다.

나는 오늘 이 일기를 시작으로 다시 글을 쓸 것이다. 나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작가의 말 지희킴 "CollageScape는 도시인들의 연대와 그로부터 얻는 위로를 그립니다." 나는 이번 프로젝트 프로덕트의 주제가 되는 앞선 문장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글을 시작했다. '연대와 위로'라는 포용은 최근 나의 회화 작업에서도 고민하는 지점이기도 하여 반가웠다. 게다가 연대와 위로는 팬데믹과 전쟁이 휩쓰는 위기의 시대를 함께 지나온 오늘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니던가. 위의 글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그 자신이다. 나는 이 네 명의 캐릭터를 콜라주 스케이프를 구성하는 개별 식물의 이름으로 설정하고 각각의 꽃말을 인용하여 그들 삶의 의미를 되짚는다. 좌절이 묻어나는 그들의 일기를 통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위해 일어서는 나와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jiheekim.co @jiheekim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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